50년대는 주로 3~5명이 침투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6~70년대 들어서면서는 단독침투를 하였으며 임무에 따라 2~3명이 침투하는 경우도 있었다.
50년 전시에는 육해공을 가리지 않고 침투를 하였으며 휴전이후에는 해상 및 육상으로 침투 하였고 우회 공작원이라 하여 제 삼국을 통하여 침투를 하기도 하였다.
대북침투 및 공작활동에 필요한 교육은 6~70년대 부터 전문적인 교육을 하였으나 전사자는 줄어들지는 않았다.
이후 1972년 7. 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었으나, 북한과 한국의 상호 첩보활동은 비밀리에 행하여졌으며 1972년 이후의 공작활동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고 있으나, 대북임무를 한 사실이 있음을 입증시켜주는 내용이 있으며 이는 민간공작원에 의한 단독임무수행자에 의해서 이루어졌고 전국 각지에서 훈련을 실시하였다. 현행 전사자 명단을 볼 때, 국가는 1972년 7.4 남북공동성명 이후의 전사자명단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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